[윤명구 칼럼] 백제의 다른 이름
[윤명구 칼럼] 백제의 다른 이름
  • 윤명구 기자
  • 승인 2020.07.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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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와 십제 및 백제 그리고 구다라

앞서 백제가 처음 일어난 곳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중국의 네 사서를 들어 살펴봤다.

송서(宋書, 488), 양서(梁書, 636) 및 통전(通典, 801)에서는 사실상 같은 기사로 보이며, 백제의 시작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 어디에도 백제가 한반도에서 진출했다는 말은 없다. 송서와 양서 및 통전에는 표현이 좀 다르나 모두가 백제는 고구려의 동쪽(부여)에서 나왔음을 알려준다.

굳이 그래도 따져본다면, 통전에 나오는 初以百家濟海, 因號百濟라는 글귀이다. 이를 두고 바다를 건너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어디로부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 사서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발해만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건너왔다는 말로 밖에는 달리 풀 수가 없다.

또 다른 하나는 남조의 양직공도(梁職貢圖, 526~539?)에도 옛 한문에서 흔한 가차를 고려할 때, 舊來夷를 舊萊夷로 볼 수도 있는 글귀가 있다. 그 뿐만 아니라 樂浪亦有遼西晉平라는 글귀는 앞서 세 사서와 비교할 때, 樂浪이 곧 百濟임을 알 수 있어서 눈길을 끈다.

 

1. 온조와 십제 그리고 백제

온조대왕의 백제 창업과정을 나타낸 기념우표
온조대왕의 백제 창업과정을 나타낸 기념우표

그런데 그런 백제를 부르는 이름이 우리의 옛 나라들인 고구려나 가야 및 신라와 마찬가지로 하나가 아닌 여럿이 됨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첫째가 백제를 세운 온조(溫祚)임금에서 비롯된 나라의 이름으로 보이는 十濟百濟가 있다.

이런 점은 강길운 선생도 자신의 글(古代史의 比較言語學的 硏究, 1990, 80~81쪽)에서 언급했듯이 온조의 을 고유어로 보고 이를 푼 주체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음을 말한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삼국을 통일했다는 신라는 흉노에 뿌리를 둔 투르크(Turk, 突厥)로 이른바 알타이말갈래로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에 있는 나라가 바로 터키(튀르키예)인데, 터키말로는 아직도 온(on)이라는 소리가 10을 뜻한다. 이는 十濟라는 이름과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온은 아직도 살아있는 ()을 나타내는 고유어이듯이 百濟라는 이름도 -과 이어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함께 추려 생각해보면, 十濟百濟는 결국 溫祚라는 소리를 주체가 다른 이들이 저마다 향가식으로 되쓴 이름에 지나지 않을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강길운 선생은 여기서 더 나아가 溫祚를 현대 몽골말 은드르(өндөр ‘높다’)와 비교하여 고구려의 高와 대응시켰고, 十濟나 百濟는 결국 나라이름보다는 혈통인 씨를 뜻했을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이나저나 이런 창업자의 이름을 딴 나라는 세계사적으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이른바 알렉산드로스 대왕((Ἀλέξανδρος ὁ Μέγας, BC.356 ~ BC.323)의 안렉산더 제국이다. 그 밖에 그의 후계자인 셀레우꼬스(그. Σέλευκος, BC.358년 ~ BC.281)가 세운 나라도 셀레우꼬스 제국이라 했다. 그리고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볼리비아도 사실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Muhammad ibn Saud)에 뿌리를 둔 아라비아와 시몬 볼리바르에 뿌리를 둔 나라라는 뜻으로 이런 예에 속한다.

 

2. 구다라(久太良)

낙랑-요서지역의 고마성의 추정지와 *KVMV라는 지명과 하천명이 보이는 곳
낙랑-요서지역의 고마성의 추정지와 *KVMV라는 지명과 하천명이 보이는 곳

한국과 중국에서는 한자 百濟로 나타내고 있으나, 오직 이웃 섬나라에서는 줄곧 百濟라고 쓰고도 구다라(くだら/久太良)라고 읽고 있다. 그렇다고 그 어원이 제대로 연구된 것도 아니지만, 일본의 사학자 우에다 마사하끼(上田正昭, 2027~2016)씨나 한국의 김용운(金容雲, 1927~2020)선생이 くだら의 말밑을 ‘큰 나라’로 본 것이 나름 알려져 있다.

역사언어학적으로 이들의 말은 어느 만큼 일리가 있는데, 한국말의 첫소리 n-이 일본말에서는 d-로 나타난다. 예로 일본 한자음의 간온(漢音, 7~8세기)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그 밖에 이런 현상은 거꾸로 일본말의 도가다(どかた)를 노가다라고 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くだら가 원래 くたら(久太良)에서 나왔기에 이런 추정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데 옛 일본말의 특성으로 가모노 죠메이(鴨長明, 1155-1216)의 무묘쇼(無名抄)에서 밝혔듯이 한자의 입성 받침(p, t, k)을 빼고 적기도 했고, 앞서 거문고의 어원에서 다뤘듯이 한자의 콧소리 받침(m, n, ŋ)도 뺀 듯한 사례가 적지 않게 보인다. 그렇다면 くだら/くたら는 곰나루(< 고마ㄴ.ㄹ. 熊津(龍歌) < *kVmV-nVlV > 倭. 久麻那利/久麻怒利)나 금미달(今彌達, 삼국유사)과도 이어질 수가 있다.

특히, 백제가 원래 부여에서 고구려와 함께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고구려말인 (, ‘산, 성’)을 가진 지명으로 곰달이나 금미달이 일본말로 넘어가 음운변화(*kum > *kuu > ku)에 따라 구다라로 달라졌다고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아울러  중고한어 *that > 한. *tal/tar과 옛 일본말에 반영된 太郎 *tara는 둘 다 부여갈래의 고구려말<>을 나타내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중국의 여러 사서에서는 백제 초기의 도읍을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중국사서 속에 보이는 백제의 도읍명

위에서 혹 居拔固麻에서 둘째 마디가 조금 달리 보일는지 몰라도 이에는 당시 중국음운에 관련된 사항으로 보인다. 즉, 위의 사서들이 쓰여지던 시기(7세기)에는 첫소리가 콧소리인 ŋ-, m- 및 n-이 ŋg-, mb- 및 nd-로 소리내는 콧소리벗기(Entnasalisierung, 非鼻音化)가 있었다. 이에 따르면 麻와 拔은 *mba와 *ba로 되짜여질 수 있어서 둘 다 *ba라는 같은 소리로 귀결된다.

물론, 熊津, 고마ㄴ.ㄹ.(龍歌) 및 일본. 久麻那利/久麻怒利에서 볼 수 있듯이 固麻가 먼저이며, 뒤에 중국 자체의 음운변화에 따라 居拔이 함께 쓰인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원래의 소리는 *ku(o)ma였을 것이다. 또 우리 사서나 일본의 글에서 보이는 -이나 -太良는 중국어에서는 城으로 갈음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나라라 할지라도 그 처음은 작은 마을이나 도시로부터 발전하였던 것을 중국의 은(殷), 그리스의 아테네나 스파르타 그리고 로마를 통해서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백제도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백제의 또 다른 이름인 구다라도 이렇듯이 도읍지의 이름에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있다.

팩트코리아뉴스=윤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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