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K 문화가산책] 착각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허수경 시인의 마지막 말들
[스타K 문화가산책] 착각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허수경 시인의 마지막 말들
  • 허정희 기자
  • 승인 2020.06.1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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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에 따르면 오는 10월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에는 시인이 남긴 유고 원고가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뉴스1

모든 사람은 각자가 소중하게 여기는 날이 있다. 생일, 시험합격일, 결혼기념일 등 누군가에겐 아무 날도 아니지만 당사자 혹은 그 동료들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날이 있다.

고(故) 허수경 시인(1964~2018)과 그의 가족, 동료들에게는 6월9일이 그런 날일 것이다. 이날은 허 시인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월9일은 이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날로 자리잡게 됐다. 출판사 난다가 허 시인의 56번째 생일인 올해, 유고 산문 '오늘의 착각'을 펴냈기 때문이다.

허수경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하고 1992년 독일로 건너간 이후 30년 가까이 시, 산문, 소설, 동화 등 다양한 글을 쓴 작가다. 인간 내면에 숨겨진 외로움과 그리움을 바탕으로 시를 쓰면서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빛냈다. 역사의식과 시대감각, 고고학적인 사유까지 결합한 그만의 시세계를 펼쳐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말기암으로 투병하다 2018년 10월3일 생을 마감한다. '오늘의 착각'은 그런 허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14~2016년 8회에 걸쳐 문학계간지 '발견'에 연재한 글을 한데 모은 책이다. 허 시인의 글은 우리 주변 언제 어디에나 있는 '착각'을 주제로 한다.

"착각이라는 상태에 대한 처방전이 있을 리가 없고 있을 필요도 없다. 착각은 우리 앞에 옆에 뒤에 그리고 언제나 있다. 방향을 가리키는 전치사와 후치사 사이에 삶은 있다가 간다. 방향을 잃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허수경은 '시인의 삶'을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스스로 떠올린 다양한 '착각'에 대해 말한다. 그의 말이 적힌 산문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허수경이 되고, 시인이 되며, 혹은 나도 모르던 내가 된다.

또한 허 시인의 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방향을 잃'고 '이곳에 있는데 이곳에 없'으며, 착각이 아님에도 착각하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허 시인의 존재, 그리고 그의 글은 먹먹함을 부른다. 하지만 글이 슬프게 다가오진 않는다. 허 시인의 따뜻한 문체 덕분일 수도 있고, 혹은 슬픔을 착각으로 여길 수 있는 불완전함의 모순 덕분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허 시인의 글을 읽고나면 6월9일이 아무 날이 아닌 사람에게도 '아무 날'이 되게 한다는 점이다. 책을 통해 허 시인이 속삭이는 아련한 정서를 듣다보면, 차갑고 빽빽한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빈틈이라는 착각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곳에 있는데 이곳에 없다는 느낌.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 섬뜩한 것은 이것이 착각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데 있다. 언젠가는 너를 잃어버릴 거라는 이 확연한 사실을 착각으로 위장하여 저녁 어둠에 놓아두는 것."('김행숙과 하이네의 착각, 혹은 다람쥐의 착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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