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K 사실은?] "어떻게 軍이 국민을"…5·18 시민 일기 속엔 공포·분노
[팩트K 사실은?] "어떻게 軍이 국민을"…5·18 시민 일기 속엔 공포·분노
  • 박종환 기자
  • 승인 2020.05.04 0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980년 5월 그날을 기록한 시민들의 '오월일기' 기증이 잇따르고 있다.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서석고 3학년이던 장식씨의 일기.(광주시 제공)2020.4.29/뉴스1 © News1 박준배 기자

"군인들이, 그것도 명성 있는 공수부대 특전단이 이처럼 무자비하게 국민을 학살 할 수 있었을까요. 천인공노할 사건이 이곳 광주에서 터지고야 말았습니다."(천주교 광주대교구 직원 주이택씨)

"광주시민을 개죽임시키겠다는 강도보다도 악랄하고 못돼먹은 자식들. 왜 그놈들의 단검 아래, 상대방이 공산당도 아니고 우리 국민인데, 피를 흘리면서 목숨을 잃어야 하느냐."(전남대학교 4학년생 이춘례씨)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세력이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와 전남에서 저지른 무차별 학살에 시민들은 충격을 받았고, 공포를 느꼈고, 이윽고 분노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추가 공개한 4편의 시민들 일기에는 이같은 공포와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직장인과 학생, 참상을 전해들었던 주부나 초등학생 등은 각자가 보고들은 경험과 감정을 글로 옮겼다.

광주여자고등학교 3학년생이던 주소연씨는 22일부터 26일까지 도청 취사반에서 일했다. 27일 계엄군 공격으로 도청이 함락되면서 집으로 돌아온 주씨는 "딸이 도청에서 죽었을지 모른다"며 걱정하던 부모와 재회한 뒤 '견딜 수가 없어서'라는 일기를 남겼다.

주씨는 "공수부대는 처음에는 몽둥이로, 다음은 대검으로, 다음에는 총으로 우리 시민을 무차별 살해헀으며, 도망가는 사람까지 모두 잡아 무차별 살해했다"며 "시민들은 공수부대에 맞서기 위해 무기고를 털었다. 날마다 도청 앞 광장에 모인 약 20만명의 시민은 '전두환 물러가라', '김대중 석방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등 민주화운동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으나 정부는 계속 광주시민을 폭도, 불순분자로 몰고 있다"고 적었다.

군이 시민들에게 조준사격을 감행한 21일 전남대 졸업생이던 민영량씨는 "이제 계엄군은 시민을 죽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시내 고층 빌딩에서 차분히 성별, 연령 구분 없이 사격했다"며 "안타까운 이 심정을 누가 알아주며 이 사무친 한을 풀 길이 있을까"라고 기록했다.

박지원 당시 대안신당(가칭) 의원이 지난해 11월26일 공개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진압 장면. (박지원 의원실 제공) /뉴스1DB © News1

당시 시위 소식을 전해들을 수밖에 없던 이들의 일기에서는 막연한 두려움이 읽힌다.

어린이날, 학교 체육대회, 어버이날에 있었던 일, 생일잔치를 하지 못한 아쉬움 등을 쓰던 김현경씨(당시 동산초등학교 6학년생)는 18~21일 각각 '무서움', '공포', '무섭다', '총'이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남겼다.

김씨는 "공수부대 아저씨들이 잔인한 것 같다",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나라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이 비참한 사건을 아는지, 왜 수습을 안 해주나. 무서워서 밖에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왜 사람을 마구 죽이는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주부 허경덕씨는 "모든 통신망은 불통이고 흉흉한 소식만 무성하다"면서 가슴 부위를 잘린 여성, 변을 당한 새신부 등의 이야기를 남겼다.

허씨는 소식이 끊긴 하숙생이 며칠 만에 돌아오자 "오늘 저녁밥은 된장국에 김치뿐인데도 꿀맛"이라고 쓴 뒤 "빨리 평화가 오게 해주세요. 아군끼리 서로 싸우다가 다친 모두가 당신의 아들, 딸이니 그 영육의 상처 낫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문을 적기도 했다.

박지원 당시 대안신당(가칭) 의원이 지난해 11월26일 공개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진압 장면. (박지원 의원실 제공) /뉴스1DB © News1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 대한 분함도 남겼다.

장식씨(서석고등학교 3학년생)는 "북괴군과 싸우기 위해 훈련해 온 공수부대원들이 여고생들의 옷을 찢고 브라자(브래지어)를 벗기고 단도로 여고생들을 죽였다. 이를 본 남학생들이 대항하자 학생들을 칼로 찌르고 데모 방지용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고 당시 심경을 표현했다.

이어 "이런 일들이 발발하고 있는데도 18·19일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일언반구도 보도하지 않았다. 보도하는 것이 희생자가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부산·마산 사태가 발발했을 때 여기 광주에서는 그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타 도시에서는 광주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고 썼다.

이춘례씨는 19일 일기에서 "연이틀째 사람이 개새끼처럼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데도 언론보도는 죽어있고 한 마디조차 내뱉지 못하고 있다"며 "몇 사람의 정권욕에 놀아나는 (현실이) 어처구니없다"고 적었다.

주소연씨도 22일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공수부대의 갖은 만행으로 밝혀진 것만 해도 사망자가 200명을 능가하고 실종자는 거의 한 통에 몇 사람 꼴로 나타나고 있지만, 매스컴은 일절 이런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우리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980년 5월 그날을 기록한 시민들의 '오월일기' 기증이 잇따르고 있다.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 4학년이던 이춘례씨의 일기.(광주시 제공)2020.4.29/뉴스1 © News1 박준배 기자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시민들에게 기증 받은 일기는 지난달 29일 추가로 공개한 4편을 포함해 15편이다.

이 중 조한유·조한금·주소연·주이택씨 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기록관은 5·18 40주년을 맞아 13일부터 10월31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시에 15편의 '5월 일기'를 공개한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 10 (현대벤쳐빌) 2층
  • 대표전화 : 02-3394-8112
  • 팩스 : 0504-228-2764
  • 대표이메일 : factknews@naver.com
  • 사장 · 대표기자 : 이완기
  • 법인명 : 팩트코리아
  • 제호 : 팩트코리아뉴스
  • 등록번호 : 서울 다50619
  • 등록일 : 2015년06월25일
  • 주필 : 이광남
  • 발행 · 편집인 : 이상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홍욱
  • 팩트코리아뉴스 | 꿈•행복•사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6 팩트코리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factk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