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구 칼럼] 백제(百濟)라 불린 나라
[윤명구 칼럼] 백제(百濟)라 불린 나라
  • 윤명구 기자
  • 승인 2020.05.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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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처음 세워진 곳은 어디였을까?
삼국사기 권46 4쪽 崔致遠편
삼국사기 권46 4쪽 崔致遠편

나라 안으로는 삼국사기 권35/36에 고구려와 백제의 알려진 지명 309개와 삼국사기 권37에는 모르는 지명(三國有名未詳地分)이 356(或云포함 358)개가 적혀 있다. 김부식이 책을 쓸 때도 고구려와 백제의 53.5%나 되는 지역을 몰랐다는 말이다. 논리적으로나 단순하게나 딱 그 아는 만큼인 46.5%의 고구려와 백제사만을 알았다고 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가 하면 삼국사기에도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던 최치원 선생께서는 지금으로서는 백제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아래와 같이 써 놓았다.

高麗百濟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蠹 (삼국사기 권46)

‘고구려와 백제는 아주 잘 나갈 때 강병 100만으로 남쪽의 오월로 쳐들어갔고, 북으로는 유주, 연 및 제와 로를 흔들어 중국에 큰 해가 되었다.’

김부식(1075~1151)보다 최치원(857~908)은 2세기전 사람으로 당시 당에서 관리까지 하고 돌아왔던 해동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가 김부식보다 삼국의 역사를 잘 몰라서 과연 그런 말을 했을까?

어쨌든 김부식 자신도 모르는 것을 나름 인정하듯 최치원의 삼국에 대한 말부터 지리지에 모르는 지명까지 그런대로 남겨놓았다. 글을 쓴 김부식도 모르겠다고 적은 것을 뒷 사람들이 그들이 남겨놓은 한문을 번역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이렇다저렇다 하는 것은 웃픈 일이다.

또 나라 밖으로는 중국 남조 제(齊, 479~502)의 역사를 적은 남제서(537)에는 백제에 대한 기사로 보이는 1칸 6자, 12칸 300자(12X25) 및 1칸 14자, 총 320자가 지워져 있다. 이처럼 한국의 고대사는 어디에 근거해서 이렇다 저렇다는 식으로 쉬 말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라 안팎으로 어떤 까닭인지 역사적 사실이 훼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제서(南齊書) 권58의 3쪽 동남이(東南夷) 백제(百濟) 조항 앞뒤로 320자가 지워져 있다.
남제서(南齊書) 권58의 3쪽 동남이(東南夷) 백제(百濟) 조항 앞뒤로 320자가 지워져 있다.

최치원 선생의 말씀과 남제서의 지워진 줄에 굳이 상상을 더하지 않더라도 답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백제는 실제 그랬기에 중국인의 입장에서 보기 싫어서 그냥 파버린 것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또 그들이 이렇게 춘추에 맞게 사리부재(詞俚不載)하는 것이 중화주의사관에 딱 들어맞는 것이리라.

어쨌든 지난 고구려에 대한 글에서도 설화를 들어 부여와 고구려 및 백제의 관계를 알아 봤다. 그런데 백제는 百濟라고 일반적으로 쓰지만, 앞서 伯濟라고도 썼고, 또 十濟라고도 썼다. 그 밖에도 沸流, 慰禮라고도 했으며, 그들 뿌리를 좇아 남부여(南夫餘)라고도 했다.

세계사를 보면 어떤 나라나 처음에는 부족을 이루고 커져서 하나의 도시를 이루게 되는데 폴리스(πόλις)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폴리스마다 한 세력이 되어서 아테네(Ἀθῆναι)나 스빠르따(Σπάρτη)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헬라의 나라(Ἑλλάς)라는 생각으로 오랑캐(βάρβαρος)에 맞서는 민족의식을 발휘하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원래 부루부여라 불리던 동이족 공동체가 있었고, 중원의 하화(夏華)족과 경계이던 幽州(유주)에 조선이라는 크레올 문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 유주지역에 자리를 텄던 첫 나라가 孤竹國(고죽국)이거나 朝鮮(조선)이었고, 그 뒤에 다시 百濟(백제, 그때는 固麻沸流)로 이어졌다. 거기가 그들의 시원지였기에 뒷날 중국이 갈리어 혼란하던 남북조시절(386~589) 산동과 중국 동해안지역을 점령했다는 기사가 적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백제의 이동(녹색)과 공략(적색)
백제의 이동(녹색)과 공략(적색)

현재의 역사대로 한반도 서남단 경기충청전라지역에 있던 작은 나라가 뭍길도 아닌 바다를 넘어 왜(倭)처럼 문화경제적 열등지역도 아닌 중원세력에 군사행동을 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 그보다는 백제가 처음 섰던 곳이 지명 縣이나 하천명 巨馬-河에서 보이듯 백제의 도읍이라는 固麻(居拔)나 일본에서 고구려를 뜻하는 고마(こま), 그 밖에 고막-해(庫莫-奚)라고 알려진 무리와도 이어질 수 있는 밑터전으로 유주지역이 아닌가 싶다.

비록 한국의 사학계가 이상하리만치 선택적으로 배제하거나 무시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엄연히 역사적 사실로 중국의 여러 사서들에 적혀 있다. 그 첫째가 송서(宋書, 488)이며,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 있다.

百濟國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其後高驪略有遼東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謂之晉平郡晉平縣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천리 남짓에 있었으나, 그 뒤 고려가 요동을 앗자, 백제는 요서를 앗았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일러 진평군 진평현이라 했다.’

요동의 동쪽 천리 남짓이라는 말은 고구려와 백제가 원래 같은 뿌리로 보다 정확히는 동북방 천리 남짓한 곳의 부여에서 나왔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또 遼란 명칭은 일찍이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이젯말로 ‘변경, 끄트머리’란 뜻의 일반명사 및 ‘멀다’라는 형용사로 중국의 국력에 따라 중원에서 멀어지거나 가까워질 수 있는 변경지역을 뜻했다. 따라서 이런 생각이 없이 지금의 랴오허(遼河)를 당시의 遼河와 같다고 고정화시키면, 지금 한국사에서 홀본(忽本)성을 압록강 지류나 훈강변에 있었다는 모순에 이르게 된다. 삼국사기 권37에는 홀본이 蓋漢玄菟郡之界大遼國東京之西라고 적혀 있다. 요나라의 동경은 현재의 랴오양(遼陽) 일대이다. 

양직공도(梁職貢圖, 526~539?)의 백제국 사신도 및 기사
양직공도(梁職貢圖, 526~539?)의 백제국 사신도 및 기사

또 남조의 양(梁, 502~557)에 공물을 바치는 그림으로 알려진 양직공도(梁職貢圖, 526~539?)에 적힌 것이 아래와 같이 눈길을 끈다.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麗畧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 ...

‘백제는 예로부터 이(夷)로 마한에 딸려 있었다. 진(晉, 265~420) 끝 무렵 구려가 요동을 앗아가자 낙랑도 요서 진평현을 갖게 되었다.’

앞서 송서에 나온 글과 비교해 보면, 위의 글에서는 백제가 낙랑(樂浪)이라는 표현으로 적혀 있는 것이 다르다. 낙랑이 백제라는 말인지 또는 낙랑이 뒷날 백제가 되었다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낙랑이 백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을 두고도 말이 많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아직까지 위치가 결코 확정되지 않은 곳이다.

다만 한자의 특성상 樂浪(낙랑)과 (롼 '난하')의 음상을 생각해 볼 만하다. 중국어에서는 음운축약 현상이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외래어의 수용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공교롭게도 樂浪이나 玄菟(현토)라는 땅이름은 麒麟(기린 < *kVlVn 鹿변, 한. 고라니)처럼 결코 순수중국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양서(梁書, 636)에도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百濟者 其先東夷有三韓國 … 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 晉世句驪既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 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백제란 것은 그 조상이 동이이며 세 한국이 있었는데 … 그 나라는 본래 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나라 때 구려가 요동을 앗자, 백제도 요서와 진평 두 군에 눌러 앉았고, 스스로 백제군을 뒀다.’

통전(通典, 801)에도 비슷한 기사가 아래와 같이 실려 있다.

百濟, 即後漢末夫餘王尉仇台之後, 後魏時百濟王上表云: ⸀臣與高麗先出夫餘.⸥ 初以百家濟海, 因號百濟. 晉時句麗既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 今柳城、北平之間.

‘백제, 곧 후한말 부여왕 위구태의 뒤, 후위 때는 백제왕이 글을 올려 ⸀신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습니다.⸥라 말했다. 처음에 백 집으로 바다를 건넜기에 백제로 부른다. 진 때는 구려가 앞서 요동을 앗았기에, 백제도 요서, 진평 두 군에 눌러앉았는데, 오늘의 柳城과 北平 사이다.’

엄밀히 말해서 위 네 사서 어디에도 한반도의 백제 본토에서 요서지역으로 쳐들어갔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원래 고구려와 한 뿌리에서 나왔고 (나뉘어져) 고구려가 요동을 갖고 백제도 요서를 갖게 되었다는 말만 있다. 과연 우리는 백제에 대해 뭘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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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기이 제1 고조선편: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당 裵矩전에는 (구)려가 고죽국(오늘 海州: 황해도의 해주가 아님)이라고 한다.' 

 

팩트코리아뉴스=윤명구 기자 ut_mg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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