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구 칼럼] 고구려(高句麗)와 마한(馬韓)
[윤명구 칼럼] 고구려(高句麗)와 마한(馬韓)
  • 윤명구 기자
  • 승인 2020.02.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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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선생은 마한이 고구려라 또렷이 말씀하셨다.
고구려의 건국지 홀본성(忽本城), 오녀산성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고구려의 건국지 홀본성(忽本城), 오녀산성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최치원 선생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뛰어나 나라에서 뽑혀 당나라로 조기유학을 떠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리가 되었고, 당시 당을 혼란에 빠뜨렸던 황소의 난마저 붓 한 자루(討黃巢檄文)로 꺾은 천재이자 걸출이었다.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름난 학자관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선생은 중국의 후한서나 삼국지를 비롯한 어떤 사서에도 자세히 나오지 않던 역사의 조각을 아주 상세히 알렸던 분이다.

먼저, 정사로 삼는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1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新羅疆界古傳記不同 … 崔致遠曰馬韓則高麗卞韓則百濟辰韓則新羅也.

‘신라의 영토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글이 같지 않아 … 최치원이 이르되, 마한이 곧 고려, 변한이 곧 백제, 진한이 곧 신라다.’

그리고 다시 같은 책 권 제46, 열전 제6, 최치원 편에서도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 있다.

崔致遠字孤雲(或云海雲) 王京沙梁部人也 … 其文集有上太師侍中狀云伏聞東海之外有三國其名馬韓卞韓辰韓馬韓則高麗卞韓則百濟辰韓則新羅也

‘최치원, 자는 고운(또는 해운) 서울인 사량부 사람이다 … 그의 글모음에는 태사시중에게 올리는 장계가 있는데, 듣건대, (중국의)동해 밖에 세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은 마한, 변한, 진한으로, 마한이 곧 고구려고, 변한이 곧 백제이며, 진한이 곧 신라이다.’

또 정사에 버금가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 기이 제1 마한편에도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온다.

崔致遠云 馬韓麗也 辰韓羅也

‘최치원이 이르길, 마한이 려이고, 진한이 라이다.’

우리가 현재 배우는 역사와는 매우 다르다. 삼국사기를 정사라며 받들면서도 그 안에 두 차례나 버젓이 나와 있는 당대 최고의 학자가 했던 말을 우리 사학계는 왜 배제시킬까? 그런 의문은 사학자들에게나 던져 버리고 여기서는 그냥 순수한 언어적 관련성만 다뤄 보고자 한다.

사실, 고구려 사람들이 남긴 가장 오랜 금석문인 호태왕비에는 고구려란 명칭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國-이니 官-이니 舊民이니 하는 글만 보이는데, 태왕과 선조들의 묘를 지키는 집/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에 가장 먼저 새긴 구민 또는 보이는 賣句餘라는 이름이 나온다.

아마도 賣句餘(매구여)가 고구려인들이 스스로를 일컫던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정복군주들의 비문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자신들의 나라나 뿌리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예로 이란의 베히스툰 벼랑에 새겨진 다라야바우슈(다리우스) 대왕의 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1. 줄 adam Dārayavauš xšāyaθiya vazraka xšāyaθiya xšāyaθiyānām

       ‘나는 다라야바우슈, 큰 임금이며, 임금들의 임금이며,

2. 줄 ānām xšāyaθiya Pārsaiy xšāyaθiya dahyūnām Vištāspahyā ...

       파르사의 임금이며, 비슈타스파(다리우스의 아버지)네 땅의 임금이다.’

게다가 저우파까오(周法高)의 상고한어 재구음으로는 賣句餘를 *mæi-kew-riaγ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 소릿값은 어느 만큼 우리에게는 눈에 익다. 다름아닌 (맥), 勿吉(물길) 또는 靺鞨(말갈)이라 불리던 만주에 살던 사람들의 이름이다.

또 우리가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적 관계에서 설화로 나오는 금개구리[金]도 있다. 개구리? 지금은 개구리라고 하지만, 불과 2백여년전만 해도 많이들 머구리라고 했다. 그때는 [메구리]라고 소리 내었다. 아직도 평안 및 함경도 사투리로는 머구리메구리라고 한다.

지난 첫 글인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넌 연오랑세오녀>에서 말했듯이 옛날 어느 곳에서는 쓰던 말이 뒷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비슷한 소리에 이끌려 설화(민속어원)가 만들어지게 된다. 즉, 나라를 가리키던 메구리 또는 그와 비슷한 소리들(무구리/무꾸리/모구리 따위)이 한자인 高麗로 갈음되어 역사에 적혔고, 나라마저 망한 뒤 그 뜻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곤 한참 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뜬금없이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아버지가 금개구리였다고 적은 것(일 것)이다.

다시 하나 둘 정리해 보도록 하자! 고구려인이 새긴 호태왕비문에 보이는 賣句餘라는 이름이 눈에 띄는데, 시대를 감안하면 그 소릿값이 *mekuri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중국에서 고구려를 뜻하던 (맥)이라던 글에서도 *mek-이 보인다. 勿吉(물길) 또는 靺鞨(말갈)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어도 *mVkVr(V)라는 소리를 꺼낼 수 있다.

그럼, 최치원 선생께서 馬韓高麗라고 했던 말을 되새겨 보자! 선생은 향찰로 향가를 짓던 신라사람이기도 하다. 마한이라고 쓰고 이제와 달리 일본에서 아직도 훈독하듯이 그 뿌리가 되는 향찰식으로 읽었을 수도 있다. 馬韓은 그러면 말가라말갈로 읽힐 수 있다.

일본에서 から라고 하는데, 이는 발해만에서 한반도에 걸쳐 있던 어떤 나라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해서 가라는 순수한 일본말이 아니며, 우리도 썼던 말이다. 가야는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요즘 말갈에 대한 연구를 몇몇 들여보면, 중국의 사서보다 한국의 사서인 삼국사기와 유사의 연대기에서 더 전에 靺鞨이라는 명칭을 썼다는 논문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 때문에 일찍이 정양용도 중국의 사서보다 먼저 나온 우리측 사서의 말갈을 가짜말갈[僞靺鞨]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 말갈이 바로 고구려라고 보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고구려는 중국사서에서도 원래 5부족 연맹체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헬레니즘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Ἀλέξανδρος)가 통일하기 전에는 아테네(Ἀθῆναι)와 스빠르따(Σπάρτη)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인 뽈리스(πόλις)들의 연맹체로 존재했다. 따라서 저마다 나라이름을 갖고도 공통적으로 헬라스(Ἑλλάς)라고 했으며, 로마에서는 또 그래끼아(Graecia)라고 불렀다.

이른 시기의 고구려연맹체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들여볼 수 있다고 본다. 부여 또는 부루라는 역사공동체를 갖고 그들 나름의 부족명을 함께 썼던 것이 뒷날 예맥이며, 말갈이며, () 등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자신들만이 과학적이고 실증적이라고 하는 생각은 위험할 수도 있다. 보다 더 겸허히 자신들이 모르는 언어, 기술 및 인류학 등등 제반의 분야를 인정하고 도움을 받아서 두루두루 가능성을 헤아려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유학시절 한 학기 동안 역사학, 고고학, 문헌학 및 비교언어학이 공동으로 이끈 세미나를 참여했는데, 놀라운 결론을 끌어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 동안 배워왔던 역사가 통째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가능성을 서로가 인정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우리보다 여러 모로 앞선 나라에서도 이러한데 우리처럼 온통 의문투성이로만 가득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내 것만이, 우리가 하는 것만이 옳다는 식의 주장은 그 자체가 엉터리가 아닐까 싶다.

 

 

팩트코리아뉴스=윤명구 기자 ut_mg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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