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PicK]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칼럼PicK]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 이동호 기자
  • 승인 2019.11.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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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에서]‘노동의 빛’,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고(故) 전태일 열사 49주기인 1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모두가 공정한 사회로 열사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1970년 11월13일, 스물두 살의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불태웠다. 노동법만 불태운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불살랐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운동의 불쏘시개가 됐다. 그가 남긴 불씨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분출됐다. 전태일은 ‘노동의 빛’이다. 그의 투쟁은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노동자들을 비추고 있다.

오늘은 전태일 49주기다. 시간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전태일보다 9년 뒤에 숨진 박정희는 박제된 인물이 되어 기념관에 갇혔다. 박정희가 밀어붙였던 10월유신, 새마을운동은 기억의 저편에 아스라하다. 반면 전태일은 사후 반세기가 다됐지만, 여전히 펄펄 살아있다. 이 땅에는 그의 뜻을 좇는 제2, 제3의 전태일, 아니 수만, 수십만의 전태일이 살고 있다. 박정희 시대는 끝났지만, 전태일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정치의 민주화는 이뤘다지만, 노동의 민주화는 아직 요원하다.

지난해 12월10일 숨진 김용균도 전태일이었다. 입사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자신의 일터인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몸이 이지러졌다. 나이 24세. 전태일보다 두 해를 더 살았다. 전태일이 개발 시기인 1960~70년대의 노동자층을 대표한다면, 김용균은 신자유주의 시대 비정규직 노동의 표상이다. 김용균의 꿈은 한전 정규직 취업이었다. 전문대학에서 전자정보통신을 전공한 그는 한전 취업을 위해 관련 자격증을 땄고 토익을 공부했다. 그러나 정규직의 벽은 높았다. 대학 졸업 후 1년 반 동안 면접만 10차례 넘게 보았다. 하지만 그를 받아준 곳은 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 그것도 계약직 사원이었다. 실력이 없어 영어를 못해 하청업체의 계약직이 된 게 아니다. 사회가 비정규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 2055만명 가운데 36.4%인 748만명이었다. 사용자에게 고용과 해고를 임의로 할 수 있는 비정규직은 자본주의가 내린 축복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비정규직은 생존과 죽음 사이를 곡예해야 하는 악마의 선물이다. 김용균은 오랜 취업 준비를 통해 비정규직의 슬픈 현실을 간파했다.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가 갈 길은 경력을 쌓아 정규직이 되는 것뿐이었다. 김용균이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약을 눈여겨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재해로 숨지기 며칠 전 김용균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시위에 동참한 것이다.

김용균의 죽음은 우발적 사고사가 아니다. 한전 하청업체의 산재는 오래전부터 악명이 높았다. 김용균이 죽기 전 5년 동안 한전 계열 발전 5개사에서 21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21명은 모두 협력업체 노동자였다. 우연이 아니다. 김용균의 죽음은 이미 예상됐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산재 사망률 1위다. 한해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는다. 하루 6명꼴. 죽어가는 이들은 거개가 비정규직이다.

전태일 시대의 노동은 공장 안에서 이뤄졌다. 오늘날 노동은 어디에나 있다. 공장을 넘어 마트, 음식점, 학교, 공항, 톨게이트에도 있고 온라인 플랫폼에도 존재한다. 이른바 ‘유비쿼터스 노동’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비정규직의 증가가 유비쿼터스를 확장시킨다. 노동의 분화도 함께 이뤄진다. 노동의 갑을관계가 형성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직과 비조직 간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김용균은 하청, 중소기업, 비조직, 비정규직의 노동자였다. 그는 ‘을 중의 을’이었다.

조운찬 경향신문 논설위원
조운찬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용균의 죽음은 ‘을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분노는 힘이 되어 지지부진하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이끌어냈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자는 게 골자다. 그런데 ‘위험 업무 자체에 대한 외주 금지’는 법안에 문서화되지 않았다. 김용균이 일했던 화력발전소 같은 산재 빈발 업체들은 외주 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원청 업체의 산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용균법’이 김용균을 보호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달 26일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이 출범했다. 산재 없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김용균들’이 나선 것이다. 전태일이 몸을 불살라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다면, 김용균은 죽음으로써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 어젠다로 끌어올렸다. 김용균은 또 하나의 ‘노동의 빛’이다. 오늘의 노동은 더 이상 기업의 문제도, 노사의 문제만도 아니다. 전 사회의 문제다. 노동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김용균재단’으로도, 노동자들의 힘만으로도 안된다. 사회와 정부가 나서 노동의 양극화를 막고 비정규직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 없는 ‘노동 존중’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경향신문 2019.11.12. 조운찬 논설위원]

팩트코리아뉴스=이동호 기자 factk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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