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윤정희, 알츠하이머 투병 10년... 그 후
국민배우 윤정희, 알츠하이머 투병 10년... 그 후
  • 이동호 기자
  • 승인 2019.11.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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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아내 마지막 작품이 ‘시’여서 감사하다"
배우 윤정희가 알츠하이머로 인해 더이상의 연기 활동이 어려운 상태로 알려져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사진=영화 '시'

 


배우 윤정희(75)가 알츠하이머로 인해 더이상의 연기 활동이 어려운 상태로 알려져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10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피아니스트 백건우(73)와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42)는 지난 8일 경향신문을 방문해 “아내(어머니)가 거의 10년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며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아버지와 딸은, 한국의 영화 관계자들과 배우 윤정희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팬들을 생각해 “이제는 얘기할 때가 됐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백건우는 “아내의 마지막 작품이 이창동 감독의 '시'여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좋은 감독에, 그렇게 좋은 영화로 배우로서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이 감독이 아내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극중 이름도 아내 본명인 ‘미자’를 그대로 썼으니까요. 시나리오 집필 중에는 몰랐겠지만, 아마 촬영을 하면서는 이 감독도 아내 상태를 조금이나마 눈치챘을 겁니다.”

딸 진희씨는 “지금 어머니는 파리 근교의 호숫가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진희씨 아파트 바로 곁에 “엄마를 위한 집”을 구했다고 했다. “간호사들이 돌아가면서 24시간 돌보고 있고 전문의들이 집을 방문해 치료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세 끼 식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진희씨 몫이다.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중인 진희씨의 이번 방한은 어머니 상태를 한국에 전해야 한다는 ‘공적인 의무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아빠 혼자서는 버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도 아내와 같이 지냈던 백건우는 지금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많이 허전하다”고 답했다. “40년 동안 매일 24시간씩을 거의 붙어있다시피한 사람이 지금 곁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정성을 다해 엄마를 보살피고 있는 딸한테 고마울 뿐이지요.”

아래는 경향신문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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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 전 함께 뵀을 때만 해도, 의뢰가 들어온 시나리오를 읽고 계실 정도로 일상생활을 유지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백건우)“이후에 진행이 빨랐거든. 이젠 얘기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어요. 이 병은 누구한테나 올 수 있고, 누가 뭘 잘못해서 오는 병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 병이어서 (가족 입장에서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함께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가까운 관계일수록 힘든 게 사실이죠. 감정적으로 전이가 되니까. 우리 진희가 참 대단해요. 그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정성을 다해 엄마를 보살피고 있으니까.”

(백진희)“아빠야말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그동안 엄마를 보살폈어요. 올해 초까지도 함께 지내셨는데, 그야말로 아빠가 버티신 거죠. 세계 곳곳을 다녀야 하는 피아니스트인데, 사실은 불가능한 상황을 인내하신 거죠. 의사들도 그렇게 얘기해요. 어떻게 엄마와 동행하면서 연주를 다니셨냐고. 저는 사실 몇 해 전부터 아빠 혼자서는 더이상 감당 못한다고 계속 얘기했죠. 더이상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걸 아빠도 받아들이셔야 했어요.”

-지금 윤 선생님은 어디 계신가요?

(백건우)“아주 다행스럽게도 진희 아파트 바로 옆에 집을 빌릴 수 있었어요. 간호사들과 전문의들이 보살펴주고, 진희가 하루 세끼 식사를 챙기고…. 지금 진희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건 마음의 평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희)“사실 엄마는 딸인 저도 못 알아보시는 상태죠. 아빠는 알아봐요. 아침이면 ‘오늘 스케쥴 뭐지? 어서 움직여야지’라고 말하세요. 평생을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엄마 본인 스케줄이든, 아빠 일정이든 항상 엄마가 챙겼으니까요. 그동안 사용하거나 애착을 가졌던 물건들을 다 엄마 곁에 갖다놨어요. 사진, 방석, 이불 같은 것까지. 엄마가 좋아하는 십자가, 성모상, 아빠와 여행 다니면서 수집한 성물(聖物)도 다 갖다놨죠. 두 분이 꼭 붙어서 평생을 사셨기 때문에, 처음에는 엄마가 이 ‘이별’을 과연 견뎌낼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한데 지금은 아빠가 오는 게 두려워요. 아빠가 다녀가시면 엄마가 굉장히 혼란에 빠져요. 의사들도 만류해요.”

(백건우)“그래도 아내가 집에서 음악을 계속 들어요. 진희가 음반을 아주 많이 가져다놨거든. 영화 <시>로 칸느영화제 갔을 때 사진들도 다 챙겨서, 사진첩 만들어서 엄마 옆에 놓아주고…. 아내의 마지막 작품이 <시>라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죠. 이창동이라는 그 좋은 감독이, 내 아내를 위해 시나리오를 직접 쓴 작품이잖아요. 처음에는 아예 극중 이름이 (아내의 본명)‘손미자’였어요. 너무 실명을 쓴 거 아닌가 싶어서 나중에 극중 이름을 ‘양미자’로 성만 바꿨어요. 이 훌륭한 영화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고, 평론가상, 공로상… 여러 상도 많이 받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아내는 행복한 배우죠.”

진희씨에게 “엄마가 못 알아볼 때 심정이 어땠냐?”라고 한 것은 좀 잔인한 질문일 수도 있었다.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딸의 두 눈에 눈물이 비쳤다. “작년 성탄절에는 날 잘 알아봤는데…”라며 울음을 삼켰다. “올해 4월부터 저를 잊어버리셨어요. 나도 (여덟 살 아들 키우는) 엄마잖아요. 내 엄마가 나를 못알아보니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대체 뭔가, 저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슬프고 당혹스럽고….”

그러자 옆자리의 아빠가 “사람들은 이 병을 잘 몰라. 직접 겪어본 가족만이 알 수 있어”라고 했다. 배우 윤정희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화 <만무방>에서의 연기를 잊을 수 없다”고 하자 백건우가 말했다. “그 영화가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우리 가족이 전부 같이 갔어요. 그땐 진희가 17살이었는데….”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인터뷰 하루 전,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이뤄진 세종꿈나무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가졌다.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그 아이들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가운데 한 악장을 연주했다. ‘피아노의 거장’이라는 수식이 어색치 않은 그가 국제적 지명도가 높은 악단이 아니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공연하는 이유도 궁금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제안이 왔을 때 두말 없이 ‘오케이’했죠.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라고 들었어요. 만나 보니 아홉 살부터 스무 살까지 있더라고. 나하고 같이 연주하면서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얻는다면 그게 보람이죠. 내가 바라는 건 아이들이 자기 존재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거죠. 내가 걸어온 길도 마찬가지거든. 미국 유학 시절부터 내내, 나도 결국 똑같은 문제로 투쟁했으니까.”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딸 진희씨. 사진=경향신문

-뉴욕에서 공부하실 때 많이 어려우셨나요?

“당시에 한국 청년이 서양음악 본바닥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았죠. 집안이 부유한 것도 아니었고,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으니까. 경제적 문제? 물론 식당에서 접시도 닦았어요. 하지만 ‘가능하면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내 원칙이었죠. 학교 다니면서 반주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끝나면 곧바로 현금을 줬거든. 현악기 연주자들, 성악, 오페라, 뮤지컬 반주 등등…. 거절하지 않고 다 했어요. 극장에서 연극 배경음악도 연주했죠. 그래서 얻은 것도 있어요. 내 음악적 레퍼토리가 아주 넓어졌고, 그 과정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

다음달 7일부터는 국내에서 4개 도시를 돌며 독주회도 가질 참이다. 올해 집중하고 있는 쇼팽의 음악, 그중에서도 야상곡을 중심으로 연주하는 리사이틀이다. 7일 예술의전당, 14일 김해문화의전당, 19일 강릉아트센터, 20일 오산문화예술회관으로 이어진다. 내년에 집중할 프로젝트는 “슈만”이라고 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일정 기간 한 작곡가의 음악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연주자에게 해석이 어렵기로 손꼽히는 슈만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관현악뿐 아니라 피아노 음악도 매우 분열적이죠. 자기하고 마음이 잘 통하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의 강요 속에서 살아야 했으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던 거죠. 슈만은 정신적으로 취약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힘들었고, 비사회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라이프치히의 카페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때도 구석에서 혼자 말 없이 있던 사람이고. 아마도 그래서 글을 썼을 겁니다. 글을 쓰면서 자기를 표현했던 거죠. 일상생활 속에서도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왔다갔다 했던 사람… 음악도 그래요. 내년에 그의 음악을 어떻게 연주할지 지금도 계속 고민하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팩트코리아뉴스=이동호 기자 factk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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